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례하고 있다. 국민의힘은 이날 3시간 넘게 이어진 비공개 의원총회 끝에 '절윤(윤석열)' 결의문을 채택했다. (출처 : 뉴시스)
발표 이틀만에야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한 말도 "107명의 고민이 담겨있는 결의문을 당 대표로서 존중한다"는 것이었습니다. 이번에도 '동의'가 아닌 '존중'이란 단어를 썼습니다. 한 의원은 "장 대표 본인의 뜻이 아니라는 것"이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습니다. 언어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진 장 대표 역시 의도적으로 존중이라는 톤 다운된 표현을 쓴 거겠죠.
반대로 장 대표 지지층에서도 동요가 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. "장동혁도 배신자", "사과 정당 지긋지긋하다"는 겁니다. 12·3 비상계엄 1주년, 신년 입장문,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사건 1심 선고 등 주요 변곡점마다 계엄 사과와 절윤 압박에도 버티던 장 대표. 갑자기 왜 절연 결의문을 받아들인 건지 "다소 뜬금없다", "허무하다"는 말도 나왔습니다.
당장 보여지는 이유는 장 대표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로 악재가 겹쳤다는 겁니다. 당 지지율 하락세에 법원의 배현진 의원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인용, 여기에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천 신청 불참이 '트리거(방아쇠)'가 됐다는 시각이 당내에서 우세합니다. 최근 "장 대표가 절윤하고 선거에서 안 보이게 2선으로 물러나야한다"는 주장이 커지게 된 배경이기도 합니다.
"106명 적으로 돌려선 안 돼"…'고립' 우려
하지만 장 대표가 결정적으로 절윤 결의문을 받아들인 건 원내를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입니다. 지난 11일 입장 발표 때도 유독 강조한 건 "107명 전원"이었습니다. 장 대표는 "여러 논의 끝에 의원총회를 열고 결의문을 채택한 건, 내부 갈등을 끝내고 지방선거에 승리해야 한다는 107명 의원님들의 마음과 우리 당원들의 마음, 그리고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모든 분들의 마음이 담겨진 결과"라고 했습니다.
장 대표는 사석에서 "100명이 넘는 의원님들이 계시는데, 마지막에는 그래도 그 분들을 존중해야 한다"며 "그게 정치다. 멀리 봐야한다"고 했다고 합니다. 107명 의원 모두 지방선거 승리라는 '목표'는 같지만 그 '방식'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었을 뿐이고, 원내의 불안함을 해소하는 것도 필요한 시점이었다는 겁니다. 더 이상의 '마이웨이'는 고집, 독선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.
장 대표 측 인사는 "장 대표가 이번 결의문을 받아들인 것의 포인트는 의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한 번 수그렸다는 것"이라며 "그게 안 되면 의원들을 다 적으로 돌리게 되는 것"이라고 했습니다. 이어 "그러면 한동훈 전 대표와 다를 바가 없는 건데, 장 대표는 한 전 대표가 아니다"고 했습니다.
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. (사진출처 : 뉴시스)결의문 작성은 송 원내대표가 주도한 것으로 전해집니다. 지지층이 상처 받는 걸 우려한 장 대표를 설득한 것도 송 원내대표였다고 합니다. 한 의원은 "의원들이 '이대로는 선거 못 치른다'는 빗발치는 지역 민심을 송 원내대표에게 전달했다"고 했습니다.
메시지는 섬세했습니다. 그만큼 애매하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. 절윤의 정의를 무엇으로 할지, 어떻게 표현할지를 송 원내대표 측과 장 대표 측이 긴밀히 논의했다고 합니다. "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를 요구하는 일체의 주장에 명확히 반대한다"는 문구는 그렇게 나왔습니다.
지도부 관계자는 "'윤어게인'이라 불리는 이들 중에서도 윤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를 주장하는 건 극히 소수"라며 "장 대표 역시 마찬가지인 생각이지만 굳이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해 강성층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"이라고 했습니다.
절윤이나 계엄에 대한 사과로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는 장 대표의 상황 인식과 판단은 변함 없는 것으로 전해집니다. 투표율이 낮은 지방선거에서 지지층 결집이 우선이고, 더불어민주당의 '사과 프레임'에 빠져들수록 지지층에겐 좌절감과 패배감만 줄 뿐이라는 겁니다.
당내에선 "강성 지지층만 데리고 어떻게 선거를 치르냐"고 하지만, 반대로 "지지층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다면, 그들 없이 어떻게 선거를 치를 것인가"라는 게 장 대표의 생각이라고 합니다. 장 대표의 절윤 결의문에 대한 모호한 입장, 시한을 둔 메시지 발신은 모두 의도된 전략으로 보입니다.
장 대표는 당의 노선을 의원총회가 아닌 '전 당원 투표'로 정하는 방식도 한때 고려한 것으로 전해집니다. 당의 주인은 의원이 아닌 당원이라는 취지입니다.
지도부의 한 인사는 "당원이 뽑은 '장동혁식 정치'를 장 대표가 하게 맡기고, 그게 실패하면 장 대표가 책임지면 되는 것"이라며 "지방선거 이후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장 대표에게 미룰 의원들이 당 노선을 흔들어대는 건 맞지 않는다"고 했습니다.
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. (출처 : 뉴스1)그룹별 릴레이 회동 '세력화' 공들이기
당내 전방위 압박에 의원들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하단 걸 절실히 느꼈을 장 대표. 원내 세력화에도 공을 들이는 모습입니다. 장 대표는 결의문 발표 직후부터 의원들과 그룹별 릴레이 회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. 3040 의원, 옛 친윤 의원 등을 소수 단위로 만나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.
장 대표 취임 200일을 맞은 지난 13일에는 송 원내대표와 정점식 정책위의장, 박준태 비서실장과 영등포 전통 시장의 한 노포에서 청국장 회동을 하고 시장 상인들의 민심을 살피기도 했습니다. '장동혁-송언석 투톱은 흔들림 없는 원팀'이라는 메시지로 해석됩니다.
한 중진 의원은 "장 대표의 가장 큰 문제는 의원들에게 '도와달라' 말을 못하는 것"이라고 했습니다. 장 대표는 당 대표로 선출된 전당대회 때도 원내의 조직표 도움을 받기보다는 개인기로 돌파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. 부산 지역의 한 의원은 "충청도식 화법 탓"이라고 했고, 계파색이 옅은 한 재선 의원은 "장 대표 지지층이 흔들려도 중진들이 다 지켜줄텐데, 왜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만 내냐"고 했습니다.
오세훈 시장과 친한(한동훈)계, 소장파 의원들은 절윤 결의문 채택 이후 '행동'을 압박하고 있습니다. 말만으로는 소용 없고, 윤 전 대통령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새로운 얼굴인 혁신선대위원장으로 당의 간판을 갈아끼우고, 장 대표는 안 보이게 물러나라는 겁니다.
하지만 장 대표가 이 요구에 응답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보입니다. 장 대표는 원내 의견을 존중한 결의문 채택이 마지막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집니다. 오 시장을 향해선 "공천은 공정이 생명"이라며 날을 세웠고, 혁신선대위 구성은 '장동혁 퇴진'과 같은 말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류가 읽힙니다.
오 시장의 공천 신청 미등록에 이어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의 사퇴 논란, 그리고 서울과 경기 등 주요 지역 후보 인물난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의힘. 장 대표가 더이상의 노선 전환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'인사', 파격적인 인물로의 전략 공천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. 장 대표의 비공개 면담 일정은 지금 이 시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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